“해외 언론 보도를 보면 ‘미국 역사에서 가장 긴 전쟁이 끝났다’며 이제는 ‘내전’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러나 전쟁은 전혀 끝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언론인 사미울라 마흐디는 미국 정부가 철수 방침을 밝힌 지 불과 4달 뒤 탈레반이 점령한 현 아프간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미국에 위치한 비영리 언론전문기관 ‘국제언론인네트워크’(IJNet)는 지난 25일(현지시각) ‘긴급한 위기에 놓인 아프가니스탄의 저널리스트’ 온라인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정부가 출자한 방송매체 ‘라디오리버티’의 아프가니스탄지사 대표를 맡았던 사미울라 마흐디는 현지 언론인이 처한 위협과 언론 보도, 검열 상황을 전했다.
마흐디는 지난 15일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직전 아프간 국경을 넘어 탈출했다. 그는 신변 안전을 위해 현재 거처와 어떻게 탈출했는지는 세미나에서 밝히지 않았다. 마흐디는 탈출 이전엔 개인 신변 위협을 받아 두 달 간 라디오리버티 사무실을 나서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 내 언론인들은 전에 없는 공포 속에서 도피를 시도하고 있다. 마흐디는 “현재까지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대피하길 거절해온 이들이 이제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며 “탈레반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위협이 되는 보도를 한 몇몇 저널리스트를 찾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지난 2주간 동료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독립언론 저널리스트와 투자자들마저 이 나라를 떠나고자 한다”며 “탈레반이 점령한 뒤 미디어 미래에 대해 연구한 적 있는데, 당시 저널리스트나 언론경영인 인터뷰이들이 ‘거짓말하느니 아무말 안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로 그와 같은 두려움과 위험이 그곳에 있다”고 했다. 특히 해외가 아닌 국내 기반 매체는 신변에 도움을 얻기 위한 네트워크마저 취약하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지난 17일 점령 뒤 첫 기자회견에서 여성과 언론 자유를 존중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언론 탄압 또는 보복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외신을 통해 언론인 납치와 가족 살해, 여성 앵커 가택 외출금지 조치 등 사례가 보도됐다.
서구 미디어가 탈레반의 ‘변화’에 주목하지만 아프간 시민들 반응은 다르다. 그는 “서구 미디어가 탈레반이 바뀌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수준을 보면 놀랍다. 국내에선 그런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미디어는 ‘새롭고 온화한 탈레반’과 ‘오래된 탈레반’을 비교하지만 리더를 포함해 모든 게 같다. 다른 점 하나가 있다면 이제 그들이 테크놀로지에 가까워지고 익숙해졌다는 점이겠으나 그 안의 메시지는 같다”고 했다.
이어 “카타르에 있거나 미국 정부와 협상하는 탈레반의 (바뀐) 태도는 아프간 내 탈레반 태도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카타르의 탈레반은 국내 현장의 탈레반 조직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검열은 이미 이뤄지고 있다. 그는 “이제 (아프간 거리에서) 노래를 듣기가 어렵다. 특히 여성이 부르는 노래를 듣기가 힘들다”고 했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탈레반과 위험한 그룹들에 대한 용기 있는 보도가 여전히 나오지만, 탈레반의 계획과 그들의 행보를 다루는 보도, 즉 ‘약한 공’이 점점 많아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뉴스를 하는 이들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다.”
그는 탈레반의 카불 점령에 이르기까지 아프간 정부의 부패와 무능, 미국의 무책임한 의사결정을 비판했다. 미국이 조건 없는 철수를 선언하고 군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탈레반에 기회였다는 것이다. 마흐니는 “가니 대통령과 그와 가장 가까운 조언자들은 무능력했다. 국가안보보좌관은 안보에 관한 어떤 경험도 없는 사람이었다”며 “여기에 미국은 갑자기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9월11일까지 떠나겠다고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밝힌 것이 그들에겐 ‘무임승차’를 가능케 했다”고 했다.
현 상황에서 아프간 시민과 언론인을 지원할 방법을 묻는 질문에 그는 국제사회와 언론 역할을 강조했다. 탈레반이 현재 국제적 인정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를 인권 보호를 위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G7과 국제 비영리단체들, 인권 옹호가들에게는 지금도 그들(탈레반)에게 여성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라고 할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해외 미디어는 계속 아프간 언론과 함께 협업해 달라”고도 호소했다. “생명이 위험에 처한 아프간 언론인들을 국제 비영리단체들이 나서서 탈출시키고 안전하게 일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미국이 비현실적인 철수 날짜를 미뤄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중요하게, 각자의 정부가 탈레반을 인정하지 않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