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예술 그래피티는 작품에 작가의 이름을 새기고, 알리고, 미술관이나 수집가의 눈에 들어 영구적인 소장품이 되는 것이 작품값을 높이는 것이요, 예술성 평가의 기준이 되는 길이던 기존 미술계의 장벽을 조롱하는 새로운 개념의 예술을 전세계적으로 확장해왔다.
낙서의 저항화, 놀이의 예술화를 통해 일상의 빈자리, 낮은 자리, 가로막힌 자리들을 찾아 스프레이 물감통을 흔들어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밤에 슬쩍 거리 풍경을 바꿔 버리면서 익숙하던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만드는 그래피티 작가들의 작업 방식은 게릴라와도 같다. 남모르게, 신속하게, 그러면서도 기존 시각의 허를 찌를 것.
그래피티는 서울이든, 뉴욕이든, 런던이든, 팔레스타인 점령지구든 벽이 있고, 골목이 있는 곳이면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언더그라운드 미술 놀이의 대표적인 양식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슬금슬금 주류 미술계의 주목을 끌며 값비싼 수집품이 되고, 얼굴이 알려지면서 저명인사가 되는 작가도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주류 미술계에서 탈영토화를 감행하는 언더그라운드 저항문화를 자본의 울타리 안에 재영토화하려는 ‘밀당’의 힘겨루기 가운데서 영국 출신 뱅크시는 신분이며, 얼굴을 철저하게 숨긴 채 낙서에서 설치까지 도발적이고 저항적인 작업을 지속하는 그래피티 아시스트 계의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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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선물가게를 지나는 츨구' | ||
그런 뱅크시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도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 다니며 촬영하던 추종자를 주인공으로 하면서 그가 찍었던 촬영 테이프를 자료로 삼아서. 이렇게 촬영하던 이와 촬영 당하던 이, 작품에 담으려던 이와 작품을 만들려던 이가 뒤바뀌게 된 까닭을 담은 작품의 제목은 <선물 가게를 지나는 출구 Exit Through the Gift Shop>, 제 1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영작 가운데 하나다.
처음 <선물 가게를 지나는 출구>가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것은 그렇게 꼭꼭 가려져있던 뱅크시가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심지어 영화 안에서 신출귀몰하기로 이름난 뱅크시의 작업 방식과 결과 뿐 아니라 비록 가려지고 변조되기는 했지만 그의 몸짓과 목소리까지 엿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막상 작품을 보고나서는 의도와 결과가 꼭 일치하지 않는 것이 예술이요, 영화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입이 딱 벌어진다. 이토록 유쾌하게, 그러면서도 이토록 뒤끝 있게 할 말 다하는 뱅크시의 연출은 영화에서 영상 자료를 촬영한 이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료를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다.
형제 많은 집 막내로 해맑게 자라다가 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놓치면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부터의 전환점을 보낸 프랑스 출신 미국 이민자이자 철지난 유명 브랜드 상품을 임의로 가치를 매겨 새 가격에 내다 파는 빈티지 ㅤㅅㅑㅍ 주인인 티에리 게타는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마치 강박처럼 집요하게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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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선물가게를 지나는 츨구' | ||
처음에는 경찰에 쫓겨 가며 밤새 만들어놓은 작품이 아침이면 말끔하게 청소되던 거리 예술 그래피티가 차차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얻으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자본의 울타리 바깥 영토에서 버려진 담벼락이나 도시의 틈새를 전복적으로 물들이던 그래피티가 미술품 경매나 박물관, 돈 많은 수집가의 소장품으로 박제화되고, 전시되고, 과시되는 ‘자산’의 영토 안에 길들여지는 과정을 겪게 되자 뱅크시는 티에리를 부추긴다. 그동안 촬영했던 자료들로 그래피티 예술의 진실을 보여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티에리는 카메라에 담는데 열중했을 뿐 막상 한 번도 되짚어 본 적조차 없던 자료들을 잘라 붙이기 시작한다. 편집자를 옆에 앉히고서.
그렇게 여섯 달이 지난 후 티에리가 내놓은 완성 직전의 결과물을 본 것이 바로 뱅크시로 하여금 <선물 가게를 지나는 출구>를 직접 연출하도록 자극했다. 열성적인 과정이 반드시 제대로 의도를 담지 못할 수도, 기록에 대한 집중이 결과의 완성도를 보장하지 않을 수도, 헌신적인 추종이 추종 대상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도, 성실한 촬영이 감동적인 작품의 자료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단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어떤 해석을 하며 어떻게 존재가 변화하게 되는 지가 때로는 개인에게 뿐 아니라 세상 전체에게조차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문제를 뱅크시는 비껴가지도 정면으로 맞부딪히지도 않으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그러나 하나의 시선으로 모아낸다. 팝아트를 통해 앤디 워홀이 무의미한 도상을 자신의 기호로 만들었다면, 그런 기호를 다시 무의미로 만들어내면서 창작이 아니라 모방이, 의도가 아니라 스타일이, 진정성이 아니라 취미가 예술이 되고 상품이 되는 세태의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티에리에 대한 평가는 대중의 호응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이 내리고 있다.
뱅크시는 그 과정을 거의 티에리가 촬영한 영상 자료를 이용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엮어낸다. 앞으로 섣부른 충고를 하지 않겠노라는 뱅크시의 맺는말은 예술이 가지는 저항의 지점에 대한 자부심과 자괴감 사이에서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 울림을 어떤 식으로 받아서 되울릴 것인지는 관객 또는 대중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