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들이 끌려가고 남은 자리
KTX 승무원들이 끌려가고 남은 자리
[포토뉴스] 11일 저녁, 농성 중이던 KTX 승무원들 공권력에 강제 연행

뜨거움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하는 5월 11일. 너무도 화창한 날씨였다.

오후 12시 31분; KTX 승무원 인권위원회 10층,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사무실) 4층 농성 돌입. 경찰과 몸 싸움 중.

오후 12시 45분; KTX 승무원 국가인권위원회 10층 점거 농성 돌입. 병력 증강 중. 공권력 투입 예정. 취재 부탁드립니다.

오후 7시 27분; KTX 승무원 인권위원회 30여명, 서울지역본부 50여명 공권력 투입 강제 연행 중.

오후 7시 50분; KTX 승무원 30여명 국가인권위원회 10층 공권력 투입 중. 의경 정경 투입.

오후 8시 59분; 서울지역본부 가대위(?) 10여명 폭력진압 중. 부상자 1명 구급차로 이동 중.

전국철도노조 KTX 승무지부가 보내 온 문자메시지다. 그 시간에 갈 수가 없었다. 늦게서야 서울역 신역사 뒷편 한국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농성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0시가 다 돼 있었다. 상황이 예상만큼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잘 버티었기를 바랐다. 그래서 다시 조용히 발길을 돌릴 수 있었으면 했다. 

한국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로비와 복도에는 농성 물품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경비 서시는 분이 뜨악하게 맞아 주었다. 로비에는 공권력의 군화발 흔적들이 역력히 남아 있었다. 오랜 농성 기간 동안 그들의 ‘집’이었을 이 곳이 버텨낼 수 없는 힘에 짓밟힌 흔적이었다. 황망히 끌려나갔을 그 자리엔 주인잃은 농성 물품들만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현기증이 났다. KTX 승무원들의 비명과 절규가 들려오는 듯했다. 복도 한 쪽은 조 별로 가지런히 정리정돈돼 있는 채였다. 손가락을 셔터로 가져갔다. 주위가 침묵 속으로 빠진 것 같았다. 끌려가고 남은 자리에서 그들이 남긴 파업 투쟁의 자취들이 어지러이 시야에 들어 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농성장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직원들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고(사실 서울지역본부로 들어올 때부터 신분을 밝혔다) 조금 전 연행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 자리에 없었다’ ‘모르겠다’ ‘사무실 안에서 업무 중이었다’ ‘그렇게 시끄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고함이나 비명소리는 못 들었다’ ‘(승무원들이) 제 발로 순순히 나갔던 것 같다.’ 더 이상 물어보기 힘들었다. 발길을 돌렸다.

2층 복도를 지나치던 중 농성 물품들이 다른 쪽보다 더 어질러져 있고 몇 명의 직원들이 서 있어 그 쪽으로 향하려 하자 앞을 막아 섰다. 경비 서시는 분은 팔을 잡고 끌었다. ‘그만 나가 달라’ ‘직원들이 퇴근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날 다시 와 취재하라’ ‘더 취재하려면 입구에서 이름과 소속 목적 등을 서류에 적어라’ ‘아까 언론에서 많이 와 취재해 갔다’ ‘사전에 해당 부서에 취재 요청을 하고 왔어야 할 것 아니냐’ ‘우리도 피곤하고 괴롭다.’ 더 이상 '취재'를 고집하며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김중령 총무부장이라는 분에게 명함을 건네고 연락처를 받아 적은 뒤 돌아섰다. 김 부장은 ‘철도노조가 내일 농성 물품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우리는 물품에 손끝 하나 댈 수 없다’ ‘그들 물건이 하나라도 없어졌다고 하면 우리가 곤란해진다’ ‘명함을 받아 뒀으니 기자에게 연락이 갈 수도 있다.’ 잠시 김 부장의 눈을 뚫어지게 쏘아보다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민중언론 <참세상>(www.newscham.net)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 오후 6시30분경 전격적으로 병력을 투입해 KTX 승무원들을 강제 연행했다. 철도공사가 요청한 '업무 방해 퇴거 신청'을 법원에서 받아들인 결과였다. 하루 앞선 10일 KTX 승무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철도노사의 '최초 교섭'은 난항을 거듭하다 결국 결렬됐다.

<참세상>은 일주일 전부터 경찰이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앞에 병력을 차츰 증가시키고 출입 차량 검문, 외출 조합원 미행 등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해 오다 법원의 결정이 떨어지자 공권력을 전격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참세상>은 이어 "취재기자들의 출입까지 통제하며 농성장에 투입된 경찰은 해머와 절단기를 동원해 문고리를 뜯어내고, 저항하는 조합원들을 앞마당에 대기시켜 놓은 경찰 버스에 나누어 태웠다"며 "이 과정에서 실신한 최소 3명의 조합원들은 중앙대병원 등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뿐만 아니라 가족대책위 어머니들이 '우리 딸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 딸 얼굴만이라도 한 번 보자'며 경찰에게 호소했지만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한 어머니가 실신하기도 했다고 <참세상>은 당시 현장의 참담한 모습을 여실히 증언했다.  

<참세상>은 농성장인 서울지역본부에 있다가 연행된 이들은 현재(11일 저녁 9시58분경) 85명으로 파악됐고 용산 중랑 동작 노원 구로 서부 강서 은평경찰서 등에 나뉘어 수용됐다고 밝혔다. 끝으로 <참세상>은 '이날 낮 12시경 국가인권위원회 농성에 들어간 KTX 승무원들에 대한 공권력 투입과 강제 해산 압박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밤 10시 현재 철도노조 등 조합원들과 KTX 승무원 지원대책위의 노동사회단체 활동가들은 국가인권위 앞에서 강제 연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슴에 꿈을 품고 이제 막 사회에 진출했지만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라는 현실을 철저하게 온 몸으로 깨닫고 차별에 저항하면서 조금씩 당당해져 갔던 그들. 어떤 비겁한 타협이나 입바른 회유에도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공권력의 무지막지한 물리력에도, 장기 농성에 점점 더 뜸해지는 연대의 손길에도, 멀어지는 언론의 관심에도 오히려 더 단단한 의지를 키워갔던 KTX 승무원들.

그 여성 노동자들이 단결이 무엇인지를, 함께 싸우는 동료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했던 농성장. 이제 그들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하루가 지나면 그 흔적들은 모두 지워질 것이다. 하지만 농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갖혀 있을 유치장이, 풀려 나와 다시 서게 될 그 자리가 또 다른 농성장이다. 경기도 평택에도, 전남 순천에도, 서울 양재동에도 대한민국 구석구석 농성장이 없는 곳이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하루하루가, 그들의 일상이 바로 농성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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