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사장님, 얼굴 한 번 보자구요"
"이철 사장님, 얼굴 한 번 보자구요"
KTX 승무원, 사장 면담 요구 농성 중 경찰의 강제해산에 부상자 속출

27일 오전 8시30분, 철도공사 이철 사장이 15개 자회사 사장단과 회의를 열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 전국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조합원들이 27일 서울 동자동 철도공사 구청사 로비에서 이철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전국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조합원 150여명은 불과 100여m 거리의 철도공사 구청사로 향했다. 이들은 19일째 서울 동자동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1층 로비에서 농성을 진행 중이었다.  이철 사장에게 만나줄 것을 요구했다. 면담이 성사되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구청사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오후 1시15분경 경찰병력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KTX 승무원들이 이철 사장과 자회사 사장단을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조합원들은 구청사 로비 입구와 복도, 계단 출입구 앞을 10여 명씩 지키고 서서 사장이 면담에 응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 철도공사의 요청으로 투입된 경찰 병력이 조합원들을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경찰은 이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조합원들은 서로의 팔을 걸고 누워서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강혜련 조합원은 경찰의 발에 머리를 밟혀 뇌진탕 증세를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갔다.

김현정 조합원은 경찰이 팔을 잡고 끌어내는 과정에서 한쪽 팔에 골절상을 입었다. 허리부상을 당하고 쇼크로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탈진하는 조합원들이 속출했다. 이들 12명의 조합원은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과 용산 중앙대병원으로 호송됐다. 그 밖에도 온몸에 멍이 들고 옷이 찢기고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이들이 많았다.

철도노조는 곧바로 성명을 내어 "사장 대화를 요구하는데 폭력진압으로 대답하나?"라고 물으며 "경찰책임자와 진압을 요청한 철도공사 경영진에게 폭력진압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철도노조는 "철도공사 서울 사옥과 같은 거대한 빌딩에서 1층 로비농성을 벌이는 것을 두고 '경영진을 감금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으며 "수백 명의 전투경찰과 여경까지 동원한 상태에서 150여명에 지나지 않는 승무원들이 6층에 있는 경영진을 감금했다는 주장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오히려 경찰은 이철 사장이 KTX 승무원들과 면담을 원치 않고 있으며 진압을 원하자 무리하게 경찰을 투입한 것이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철도노조는 이어 "이철 사장과 경찰 진압책임자, 지휘책임자는 오늘의 폭력사태에 대하여 즉각 사과하고 응분의 조치를 취하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탄압한 것도 모자라 무자비하게 짓밟는 이철 사장과 철도공사 경영진의 비인간적인 경영방침은 2만5000 철도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의 자진해산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불법 점거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 남대문경찰서에 공권력을 요청했고 '큰 불상사 없이' 승무원들을 퇴거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해산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마찰은 있었지만 폭력 행사는 없었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경찰이 조합원들을 '퇴거 조치'하는 동안 이철 사장은 경찰의 '안전한 호위'를 받으며 승용차를 타고 구청사를 떠나갔다. 승무원들에게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 경찰이 강제 해산을 하기 전까지 KTX승무지부 조합원들은 철도공사 구청사 곳곳에 여러 명씩 분산, 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오후 5시경, KTX승무지부는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흥분의 기색이 가시지 않았다.

정혜원 부산KTX승무지부장은 "오늘만큼 힘들고 속상한 때가 없었다. 조합원들이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 갔다는 얘기를 듣고서도 나가 볼 수 없었다"며 "같이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 오늘 여러분 투쟁은 너무 멋있어 보였다"고 격려했다. 노조 간부들은 체포영장이 떨어져 농성장 밖을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우리의 주장과 요구는 정당하다. 정당한 권리를 다시 되찾을 때까지...." 정 지부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민세원 서울KTX승무지부장은 보다 씩씩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이철 사장을 만나보겠다고 (경영진 회의가 예정된 구청사 로비에서) 농성했다. 그러니까 바로 공권력이 투입됐다. 여러분이 경찰에 짓밟히고 있을 때 이철 사장은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자동차를 타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여러분이 가둬놓고 위협했다고 한다. 1층 로비에 있었을 뿐인데"라고 말했다.

민 지부장은 "이철 사장은 용서받지 못할 오점을 남겼다"며 "오늘 우리에게 휘두른 폭력은 전 여성노동자에게 향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언론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KTX 승무원에게 이 정도인데, 다른 투쟁사업장의 여성노동자에게는 인권침해와 폭력이 어떠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농성장 앞에서 오미선 조합원이 경찰의 폭력을 담은 증거 사진과 멍이 든 몸을 취재진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그는 "우리의 주장과 요구가 정당함에도 폭력을 휘두르고 무답으로 일관하는 이철 사장은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내일부터 서울역 대합실 등에서 이 모든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려 나가겠다"고 의지를 새롭게 밝혔다. 

민 지부장은 발언 서두에 한 언론사 기자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한 기자가 전화해서 물었다. '농성 몇 일째입니까?' 대답을 듣고 나더니 또 물어왔다. '농성 18일째인데 이철 사장이 (서울지역본부) 농성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민 지부장은 기자에게 이철 사장에게 물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KTX승무지부 350여명의 조합원들은 지난 1일부터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부실한 운영으로 감사원으로부터 매각,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KTX 관광레저가 승무 업무를 도급받아 채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승무원 운영권 위탁을 반납하고 신규채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KTX 관광레저는 지난 23일부터 승무원 신규채용 공고를 내고 29일까지 원서를 접수받고 있다. 한편 한국철도유통은 지난 23일 모든 KTX 승무원에게 이메일을 발송해 2차 해고 예고를 통보했다.

   
▲ 구청사 로비에서 경찰에게 둘러싸인 조합원이 강제 해산당하는 동료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