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무속인과의 관계가 깊다는 정치권 공방이 뜨겁다. 해당 후보자가 대통령이 됐을 때 중차대한 결정에 무속인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져 ‘무속 논란’을 따져보는 건 합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 선거는 우리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 자격을 따져보고 후보자 정책을 검증하는 자리여야 한다. 지도자 자격에 결격 사유가 있다면 검증 의제로 끌어올려 공방을 벌일 수 있지만 의제는 시민의 공공선에 부합해야 한다. 해프닝으로 가벼이 넘길 일도 아니지만, 무속 논란으로 지금처럼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는 건 과하다.
온갖 무속인 이름이 등장하고 그 무속인과의 관계를 캐묻다가는 정작 후보자의 정부 운영 방안과 정책 철학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릴 수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해 후보자 흠결을 부각하는 건 정치권 공세로 치부할 수 있지만 유권자 입장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후보자들은 ‘어떻게’를 공약 중심에 놔야 한다. 남북관계 복원의 밑그림은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자산 격차가 커지는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연일 치솟는 집값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공정’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등 미래를 그리는 비전이 정치인, 대선 후보들이 해야 할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은 후보자 자격과 정책을 검증하는 쪽으로 의제를 전환토록 해야 한다. 무속 논란이 정말 후보자 검증에 필요한 일이라면 언론은 근거를 제시하고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무속 논란 보도 내용은 단순 공방 중계 보도에 그치고 있다. 정치권 공방을 전달하는 것도 언론 역할 중 하나라고 항변하겠지만, 정치권 공방이라는 말로 포장해 클릭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나.

특히 한 언론이 무속인으로 거론된 인물의 유튜브 채널을 분석해 대선주자를 평가하는 말을 옮긴 보도는 한심할 지경이다. “코로나19는 인간이 사는 밑(하위) 30%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 돌아다닌다”는 얼토당토아니한 발언을 소개한 데 이어 대선주자 이름을 하나씩 언급하고 인기가 있다느니, 대통령 자격이 없다느니, 신기가 있다느니 같은 신변잡기식 평가를 그대로 옮기고 포털에서 읽히는 기사로 만들었다. 언론이 겉으로 정치권 공방을 내세우면서 무속 논란으로 장사하고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가깝게 지난 대선에서도 비슷한 보도는 많았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일 당시 “우주의 기운 때문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일보 등 일간지의 ‘오늘의 운세’ 지면이 점친 19대 대선 후보들의 9일 투표 당일 운세가 마지막 여론조사 공표 시점까지 알려졌던 5명 후보들의 판세와 어느 정도 들어맞아 눈길을 끈다”라는 기사처럼 대선후보 ‘운세’를 마치 과학적 근거가 있는 듯 보도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현재 이런 식의 보도는 용인되지 않는다. 한 매체는 사주풀이를 코너로 운용하다가 비판을 받은 뒤 폐지했고, AI 관상가가 본 ‘누가 왕이 될 상’이라는 보도 역시 뭇매를 맞고 삭제된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무속 논란 보도가 계속 나오는 현상은 한국 언론 수준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정치 혐오를 조장한다는 의심을 받으면서까지 이런 보도를 지속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역술인들을 불러다 놓고 대선 토론회를 중계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온다. 창피한 일이다. 사주풀이 대신 언론 보도가 채워야 할 것은 ‘어떻게’라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