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에서 초유의 무단협 사태가 이어지자 경영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앞서 SBS 경영진은 지난 5일 “20여 년에 걸쳐 구축해온 노사관계가 직원들의 근로조건과 무관한 임명동의제로 인해 원점으로 돌아간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밝히면서 “공정방송을 위해 ‘경영진 임명동의제’가 유일하고 절대적인 제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합의 내용(임명동의제 등)에만 집착한다면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직원들의 불이익에 대한 모든 책임은 노조에 있다”고 경고했다.
SBS기자협회‧PD협회‧영상기자협회‧기술인협회‧방송촬영인협회‧아나운서협회 등 사내 6개 직능단체는 8일 공동성명을 내고 “사측의 주장에는 왜(why)가 빠져있다. (사측 주장처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생존하기 위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임명동의제가 왜 걸림돌이 된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사측 주장대로) 경영진 임명동의제는 전 세계 언론사, 국내 언론사 어디에도 없던 제도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더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직원들이 피땀 흘려 쌓아온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려 하는 것은 바로 사측”이라 비판했다.
SBS 6개 직능단체는 “왜 사측이 이렇게 임명동의제를 없애지 못해 안달하는지 더 궁금하다”면서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도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 낙인찍고, 구성원들과 노조 사이를 갈라치기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노조에 대한 협박과 배척은 곧 우리에 대한 탄압과 다를 바 없기에 사측의 퇴행적 시도를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사측은 “노조가 노사문제를 외부에 기대어 또다시 회사를 극단적 혼란으로 몰아가며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며 “더 이상 회사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기 바란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 “(SBS는) 완벽한 수준의 공정방송과 소유경영 분리를 이행하고 있으며 (직원들에게) 업계 최고 대우를 지속하고 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언론자유를 위해 싸워온 원로 언론인들의 모임인 자유언론실천재단은 7일 성명에서 “무단협은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사용자들의 고전적이고 악랄한 수법이다. 지상파 방송으로서 공적 책임과 경영 투명성 담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조차 없애고자 하는 SBS경영진의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연대 의사를 밝혔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사장 임명동의제는 재적 인원 60%가 반대해야 임명을 철회할 수 있는 조항이고, 노조원이 재적 인원의 절반 수준인 상황을 감안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60% 반대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수치”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2017년과 2019년 사장 임명동의제가 시행되었으나 두 번 모두 임명 철회는 일어나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6일 성명에서 “저들이 말하는 임명동의제 폐기와 노조 추천 사외이사 추천 거부는 단협 파기를 넘어 노조 파괴를 위한 명분”이라면서 “삼성마저 무노조 경영 철학을 포기하고 없던 단체협약도 새로 체결하는 세상이지만, 윤석민 회장과 태영 자본은 단협 파괴를 통해 노동조합 자체를 무력화하지 않으면 지배력 강화와 사적 이익을 제대로 추구할 수 없다는 무도한 역주행을 가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7일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목동 SBS 사옥에 위치한 언론노조 SBS본부 농성장을 찾아 격려했다. 강은미 의원은 “대주주와 사측을 향한 비판 여론이 잠잠해지니 다시 속내를 드러내는 것 같다”면서 “힘을 보탤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정형택 SBS본부장은 “사측은 늘 정권 말기나 재허가 이후 퇴행을 거듭해왔다”면서 “임명동의제는 방송 공정성 장치이고, 방송 공정성은 방송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다. 사측은 노조의 저항에 법적 조치하겠다는 엄포만 놓고 있다. 갈등이 바깥에 드러날수록 SBS의 신뢰만 하락할 것”이라 우려했다.
SBS경영진은 지난해 말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재허가를 받은 직후인 올해 초부터 임명동의제 폐기를 요구했고, 지난 4월 단협 해지를 통고했다. SBS 대주주 TY홀딩스(태영그룹 지주회사)는 내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자산 10조를 넘어서는 대기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방송법 8조에 따라 방송사 지분을 10% 초과해 소유할 수 없어 방송법이 바뀌지 않는 한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때문에 사측이 지분 매각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임명동의제’를 사전에 없애고, 지분 매각 과정에서 구성원을 대변할 노조의 투쟁력을 사전에 꺾어 원하는 대로 협상에 나서기 위해 무단협 상황을 유도했다는 해석도 있다.
한편 언론노조는 방통위를 향해 “최근 일각에서 태영 자본에 공공재인 지상파를 영구 헌납하려는 10조 규제 완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도를 윤석민 회장과 태영 자본에 대한 특혜 보장 및 민주노조 파괴 동조 행위로 규정하고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