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 감사 "파업 부당치 않아…보수언론이 제일 나빴다"
"부당한 파업이라 생각 않는다"가 일부 언론엔 '파문'… 파업 중인 KTX 여승무원은 점거 농성
한국철도공사 감사가 지난 8일 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철도공사 김용석 감사는 "온전히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붙인 뒤 이번 파업은 "절대로 부당한 파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보수언론의 보도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번 파업은 노사간의 쟁점 때문이라기 보다는, '공공철도'라는, 정부의 교통정책과 철도의 역할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려는 파업이었다"면서, 그런데 "파업을 하고 보니, (노조 입장에서 본다고 가정하면) 제일 나쁜 놈이 누구였나?"고 물으며 정부도 경영진도 사무소장도 아닌 "보수언론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보수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파업이 며칠째 계속 되는데도, 상당수 언론이 '운영 잘 못한 철도부채를 정부에게 해결하라고 하더니, 시민을 볼모로 파업까지 한다'고 질타하지 않았나? 수만명이 파업하면 뭐하나? 언론이 한줄 적당히 써버리면 그만 아닌가?"라고 부연했다.
김용석 감사 "부당한 파업이라고 생각 안해…언론이 적당히 써버리면 그만인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보낸 이메일이었지만 현직에 있는 철도공사 고위 임원이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를 꼬집었다는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김 감사는 이어 '불법' 여부는 조금 복잡하다면서도 "절대로 부당한 파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파업이 "임금인상 같은 권리투쟁이 아니고, 정책수정을 요구하는 정치투쟁의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면, 당연히 '철도부채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초점이 모아졌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물으며 노조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의 지적대로 정부 정책과 '철도부채' 문제보다 '시민불편'과 '교통대란'을 대서특필한 '상당수 언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이메일의 중간 부분 이후부터는 파업 복귀 후의 '노조원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충고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김 감사는 2차대전 당시의 중국 공산당,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총 칼 들고 싸운 조선인' 등의 예까지 들어가며 조합원에게 "노조의 대의를 생각해서 행동해야 옳다"고 충고했다. 이어 그는 "대의를 위해서 앞장 선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희생이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관용을 통해서 자발적 지지를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감사는 또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어려운 것이다. 남들이 열을 잘못해도 그냥 넘어가던 민심이, 노동운동이 조금만 잘못해도 용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며 직위해제를 남발하고 있는 이철 철도공사 사장의 태도와는 다른 모습이다.
연합뉴스 <철도공사 감사 e메일 '파문'> 기사로 외부 알려져
김 감사의 이메일은 연합뉴스가 10일 오전 11시47분에 송고한 <철도공사 감사 e메일 '파문'> 기사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이 기사에서 "한국철도공사 감사가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사태와 관련, 전직원에 보낸 e메일에 노조파업을 일부 두둔하는 듯한 내용이 들어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고 한 뒤 김 감사의 이메일 내용을 설명했다.
연합뉴스는 이어 "김 감사는 '공사 간부는 무조건 노조가 잘못했고 노조 간부라고 공사 경영진은 나쁘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고 반대편이라도 합리적인 주장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글을 올리게 됐다'며 '파업을 중단하고 복귀한 노조원과 직원, 간부들이 앙금을 풀고 화합하자는 의미로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김 감사의 의도를 전했다. 연합뉴스는 김 감사에 대해 "80년대 초반 부평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등 재야에서 줄곳 활동해오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에서 잠시 근무한 뒤 작년 초 철도공사 감사로 부임했다"고 소개했다.
동아일보 " '파업 두둔 발언 용서
못해' '개인적인 의견일 뿐' 엇갈려"
그러자 프레시안이 오후 1시49분에 <철도공사 감사
"절대로 부당한 파업이 아니었다">는 기사를 내보냈고 이어 동아일보, 경향신문, 세계일보 등이 온라인판으로 받았다. 프레시안과 경향신문은
김 감사의 견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주목을 끌고 있다'고 각각 보도한
반면, 동아일보와 세계일보는 연합뉴스를 쫒아 '파문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철도공사 감사 "파업 부당하지 않다" 발언 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감사의 의견은 정부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고 "'선진적 노사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힌 이철 사장의 입장과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이메일 내용에 대해 "'시민을 볼모로 한 파업은 더 이상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마당에 파업을 두둔하는 발언은 용서할 수 없다'는 평가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면서 익명의 (철도공사) 직원의 말을 전했다. 동아일보는 기사 마지막에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 감사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시민사회특보를 지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3월부터 11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뒤 지난해 1월 철도공사 감사로 부임했다"며 김 감사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덧붙였다.
KTX 여승무원 철도공사 점거농성…철도유통 "10일까지 복귀 않으면 직위해제"
한편, 전국철도노조가 파업 철회를 선언한 이후에도 파업 대오를 지키고 있는 KTX승무지부 조합원 350여명은 9일 오후 5시45분경 서울 동자동 한국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1층 로비와 복도를 점거해 농성에 들어갔다.
이날 철도공사 자회사인 철도유통은 조합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이미 직위해제된 여승무원 70명은 10일 오후 6시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고 나머지 여승무원들은 추가적으로 직위해제 하겠다"고 통보했다. 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 위탁 사업권을 다른 자회사인 KTX 관광레저에 넘겼지만 아직 철도유통이 승무원 관리업무를 계속하고 있다.
KTX승무지부 조합원들은 위탁회사의 파견 계약직 신분을 벗기 위해 파업을 풀지 않고 철도공사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응답은 '계약 해지', '직위해제'라는 문자메시지 통보였다. 철도공사는 KTX 여승무원에게 '자회사의 정규직'을 제안하며 '선복귀 후협상' 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KTX관광레저는 지난달 27일 신규 인력채용 공고를 내 '사복투쟁'을 벌이고 있던 KTX 여승무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KTX승무지부장 "위탁 정규직은 정규직 아니다…언론이 제대로 알려야"
파업을 이끌고 있는 서울KTX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은 "자회사 정규직이라 하면 국민들은 제대로 된 고용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청 위탁업체의 정규직은 정규직이 아니"라며 "원청업체인 철도공사의 말 한마디에 위탁 파기가 가능해 승무원들은 언제든 구조조정에 내몰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탁이라는 게 승무원의 급여, 업무, 인사 등 모든 것을 공사에서 하라는대로 한다. 자회사는 힘이 없다. 인력이 부족한데도 충원이 안 되는 것도 공사에서 뽑으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공사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이 잘못되면 위탁이기 때문에 자신은 제3자라며 책임을 미루면 그만이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 지부장은 "철도공사가 KTX관광레저에 판매업무도 위탁하면서 승무원에게 판매인센티브를 제공해 임금이 인상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철도 안전 업무에는 더욱 소홀할 수 밖에 없다"며 "개통 때부터 승무원에 대한 실질적인 안전 교육이 없었다. 위탁 파견 관계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안전 업무를 배울 데가 없어 처음엔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안전의식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KTX 승무원 문제는 KTX 운영 자체를 잘못하고 있고, 정부가 그렇게 압박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문제 삼아야 바뀔 수 있다"면서 "이런 문제를 언론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어야 하고 그것이 곧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민 지부장의 지적대로 이번 KTX승무지부 조합원들의 파업은 언제 구조조정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계약직 신분을 벗어나기 위한 싸움일 뿐만 아니라 승객의 안전문제를 비롯한 철도의 공공성과도 뗄 수 없는 문제이다. KTX 승무원의 삶의 질과 철도의 공공성은 별개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실제로 KTX 여승무원들은 이번 파업에 들어가지 전까지 18칸 338m에 이르고 승객이 1000여명이 넘는 KTX 열차에 2~3명 만이 배치됐다. 이런 소수의 승무원이 보다 친절한 승객 서비스와 안전사고에 적절히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지선 조합원은 "호남선은 승무원이 3명 이상은 돼야 하는데 인원이 없어 2명으로 강제로 줄였고 얼마 전에는 1명으로 줄이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처음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다는 그는 "임금은 줄고 노동강도는 더 세지고 물건 판매 등 가외 업무까지 부과하려 한다"며 철도공사를 성토했다.
벼랑 끝에 내몰려 점거 농성을 선택하게 된 KTX승무지부 조합원들은 이철 철도공사 사장과의 면담과 위탁계약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 사장과의 면담이 이뤄질 때까지 무기한 점거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KTX 여승무원들의 몸부림은 한 뼘의 온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시멘트 바닥에서 열흘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오직 서로의 체온만이 의지가 될 뿐이다.
글·사진=이창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