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멀고도 가까운…
[사진으로 보는 세상] 철도노조 파업…'언론의 사회적 기능'은 어디로
'고질병'이다. 1일 새벽 1시를 기해 돌입한 철도노조의 파업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민불편을 부각하고 우려하는 것에 비해 파업에까지 이르게 된 근본 원인과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는 심층적인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것들이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과 철도의 공공적 성격에 직결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수도권 출근 대혼란 예고' '30분만에 오는 지하철 분통' '열차-수도권전철 파행운행' '등교 출근길 교통 대혼란 우려' '막판타결이냐 교통대란이냐' '물류도 비상' 등 2일 오전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의 지면을 장식한 기사들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파업 노조지도부 11명 영장' '사측 "협상결렬 땐 공권력"' '이르면 오늘중 경찰 투입할 수도' '철도 불법파업 당장 중지하라' 등의 기사와 사설로 윽박지르고 공권력 투입을 부채질하는 듯하다. 한마디로 아름다울 수 없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언론이 있는 그대로만 보도했으면…저속한 언어는 삼가달라"
전국철도노조 조연호 선전국장은 이런 언론 보도에 대해 고소를 금치 못했다. 그는 "그동안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우호적으로 보도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만 보도했으면 하는 기대를 했다. 철도노조의 입장이나 정당성은 철도공사보다 우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국장은 "우리가 파업에 돌입하지도 않은 시점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KTX 여승무원들이 '사복투쟁'을 이유로 승차거부를 당한 것을 두고 파업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며 분명한 오보라고 비판했다.
조 국장이 지적한 기사는 지난 2월27일자 조선일보 8면에 실린 <돈은 돈대로 내고…불편한 KTX> 제하의 기사다. 이 기사는 <여승무원 파업 계속, 철도 지하철도 예고>라고 부제목을 달았다. 막상 기사 본문에서는 '파업'이라는 언급이 없이 KTX 여승무원들이 서울역 대합실과 부산역 승무사무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며 1일로 예정된 철도노조의 파업 소식을 전하고 있다.
조 국장은 "그리고 어떤 언론들은 저속한 언어를 쓴다. 예를 들면 얼마 전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여승무원들이 사복을 입으면 잡상인과 구별이 안 된다고 썼다"면서 "너무 악의적이다. 기사는 기자 이름이라도 있는데, 사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설도 실명제로…파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영향"
동아일보는 지난 2월27일자 사설 <철도노조의 '철밥통'을 위한 총파업>에서 "철도유통 소속인 고속철도(KTX) 여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해 달라고 요구하며 사복(私服) 차림으로 근무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또한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뒷전이고 국민 세금을 축내는 '철밥통' 신분을 만들어 달라는 떼쓰기다. 음료와 과자를 서비스하는 여승무원이 사복을 입으면 잡상인이나 승객과 구별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 국장은 "사설도 실명제로 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신문사로 사설 쓴 분을 찾았지만 연결조차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언론이 심층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니까 시민들이 그런 사설을 보고 영향을 받아 파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 국장은 이러한 오보와 악의적 보도에 대해 조만간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 등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 회부로 '불법파업'의 낙인이 찍힌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철도노조 파업 관련 오보들을 차곡차곡 스크랩해 놓고 있었다.
언론의 앞서가기 보도도 빼놓을 수 없다. 연합뉴스는 지난 1일 저녁 7시57분에 송고한 <한국철도공사 노사 9시 협상 재개> 기사에서 "철도파업과 관련, 한국철도공사 노사가 1일 오후 9시 긴급 회동,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이날 협상에서 철도파업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런 탓인지 2일자 일부 조간신문들은 '막판 타결 가능성도' '새벽 타결 가능성도' 등 추측보도가 많았다. 교통대란을 우려하는 기사에 덧붙여서.
"앞서가기 보도에 피해자 많아…오보·악의적 보도에 대해 조정신청낼 터"
결국 철도공사 노사의 밤샘협상은 결렬됐다. 여전히 협상의 주요 쟁점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 제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공사와 노조를 동시에 가르치고 윽박지르는 일을 본분으로 삼는 듯하다.(2일자 동아일보 사설 <철도 불법파업과 이철 사장의 처신>과 조선일보 사설 <철도 노사 손잡고 파업으로 국민 협박하나> 참조.)
조 국장은 "통상적으로 언론이 많이 앞서 간다. 이런 보도에 국민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우리 조합원들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면서 "언론의 추측보도가 신속성의 측면에서 순작용으로 기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한 피해자도 많다. 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가 기대와 달리 타결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번 협상 재개와 관련해 타결 가능성은 들어본 바가 없다"고 말했다.
조 국장은 이번 파업보도 전반에 대해 "언론의 보도는 당혹스럽다. 언론의 관심이 고맙기는 하지만 노조의 요구를 제대로 확인하는 전화조차 별로 없었다. 어떤 잣대로 그렇게 쓰는지 모르겠다"면서 "우리가 파업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이 또 '시민을 볼모로 삼은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철도노동자의 생존권 문제, 사고로 인한 죽음을 부르는 열차 안전문제, 정부의 올바른 철도정책 입안 등의 과제들을 공사 그리고 정부와 대화로 해결하고 싶은데 대화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기 때문에 파업을 하는 것이다. 파업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으로 빨리 돌아가 시민 안전과 철도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다"며 조합원들의 심정을 전했다.
"해고자·비정규직 문제는 철도공사 부채·적자 문제와 연관"
2일자 신문 지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노조의 주장과 요구에 대한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교통 대혼란'을 우려하고 정부의 대응을 전달하는 기사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철도공사는…' '서울시는…' '정부는…' '경찰청은…' '산업계는…' 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넘친다. 반면에 고속철도 건설부채가 10조원에 이르고, 2004년 1729억원이던 철도공사 적자가 2005년에는 4배나 증가한 6200억원에 달하는 등의 정부 정책과 수요예측 실패, 그리고 철도공사의 민영화 및 구조조정이 철도노조의 요구와 파업과는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주목되는 것은 정부도 철도공사의 부채와 적자 문제를 지적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노조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해 왔고 공사도 인정한 문제이다. 즉 정부도 정책실패를 일정 수준 인정한 것이다. 해고자 문제도 여기서 무관할 수 없다. 산적한 적자가 그 정책실패를 보여주는 철도의 민영화와 상업화에 반대하는 투쟁 과정에서 해고자가 발생한 것이다. 또 비정규직 문제도 이와 연관돼 있다.
철도공사가 누적된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위탁관리를 확대하면서 근무형태와 여건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큰 틀에서 이런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철도노조 조연호 선전국장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직권중재의 칼날을 들이대며 '불법파업 엄단'만을 고집할 일이 아니다. 응급처방은 될지언정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전국민중연대 "언론의 사회적 기능 생각하라"
전국민중연대는 1일 <철도파업에 대한 언론의 구시대적 보도행태>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논평은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선언과 동시에 모든 언론은 일제히 철도파업에 대해 '불법파업', '물류대란', '운행차질' 등을 제목으로 삼아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불법파업 엄단조처', '시민불편', '집단이기주의' 등의 보도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투쟁에 대해 오래전부터 마치 관행처럼 굳어져 있는 보도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논평은 "철도를 움직이는 노동자들이 동시에 일손을 멈추었으니 철도운영이 정상적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언론은 파업으로 인한 손실과 불편을 수치화하고 보도하고 있다"면서 "언론은 '철도 노동자들이 왜 동시에 일손을 멈추었느냐'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도, 그 어떤 설명도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철도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자 핵심쟁점 사항인 '철도상업화 철회 및 공공성 확보, 주5일제 근무체제 개편 및 신규사업 등의 소요 인력 충원, 비정규직 철폐, 해고자 복직'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으며, 철도노동조합이 철도공사 측과 수개월간 어떤 내용의 협상을 벌였으며 왜 결렬되어 파업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논평은 '노동자 농민들의 투쟁에 대해 반복되는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면서 "언론 종사자들은 언론의 최소한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제발 생각해 보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문차량기지에 조합원 집결…파업 참여율 역대 최대
한편 철도공사 노사의 협상이 결렬된 지난 2월28일 밤부터 서울 이문차량기지로 집결한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그 어느 파업 때보다도 결의가 높았다. 파업 1일차인 1일 오전 이문차량기지에서 만난 김영진(42) 수색차량지부 지부장은 조합원들의 참여와 결의가 높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첫째, 그동안 철도청 시절 일반직은 노조 조합원 자격이 없었는데 공사로 전환되면서 조합원 자격이 생겼다. 또 공사가 직제 개편을 하면서 청-지역본부-사무소를 공사-지사로 조직 슬림화를 꾀하면서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 사이에 구조조정과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다.
둘째, 철도공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ERP(전사적 자원관리)를 추진한다. ERP가 도입되면 현장의 직원들이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곧 드러나고 5개의 등급으로 그 평가가 내려진다. 여기서 평가 점수를 낮게 받은 직원들은 인사나 성과급 지급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 사이에 이런 불안감이 팽배해 있고 실제 구조조정 과정이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셋째, 그동안 몇 번의 투쟁 속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구조조정이었다. 조합원들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해고자들에 대해 원죄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이번 투쟁을 통해서 해고자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결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늘어나는 비정규직 문제가 비정규직만의 것이 아니라 곧 내 문제라는 인식이다. 정규직이 대거 비정규직화하고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는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 요구를 바로 심정적으로 받아 안고 있는 것이다."
김 지부장은 "이번 투쟁에 반드시 승리해서 5대 요구안을 쟁취하고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KTX 여승무원 "정당한 요구, 거리낌 없다…고객들 곁으로 가고 싶다"
철도노조는 지난 1988년, 1994년, 2002년, 2003년에 파업을 벌였다. 2000년대 들어 세 번째 파업인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조합원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조연호 선전국장의 말에 따르면 1일 저녁 9시경 현재 2만5000여 조합원 중 파업 참가 인원이 1만7000명을 넘어섰다.
파업 참여율과 복귀자 수와 관련해 철도노조는 1일 짧은 보도자료를 냈다. <공사측이 언론에 보낸 보도자료의 허구성>이라는 제목이다. 철도공사의 3월1일 파업 참여자 수에 대한 보도자료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오전 10시 파업 참여자 1만6388명, 복귀자 997명. 오후 1시 파업 참여자 1만1760명 복귀자 1142명. 참여자가 5000여명이나 줄었는데 복귀자는 20여명 밖에 늘지 않았다. 그럼 나머지 조합원은 어디로 갔을까!"
이문 차량기지를 가득 채운 7000여명의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파업을 처음 겪는 KTX 여승무원들의 모습은 이번 투쟁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다. 서울KTX 승무지부 강영실(26) 조합원은 "파업이라는 단어도 생소했다. 처음이라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겁나기도" 했다면서도 "파업에 참여해서 보니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을 보니까 그 결의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내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기쁘고 인생에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어렵게 감회를 털어 놓았다.
개인적인 결의를 묻는 질문에 강영실 조합원은 "저희 KTX 승무원들은 정당한 요구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지만 거리낌은 전혀 없다"면서 "조금이라도 우리들의 진심을 헤아려서 이번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열차를 이용하시는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