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 과태료만 봐도 처참한 방송작가 계약서 실태

여전히 방송작가 표준계약서 위반 작가들 노동권 보장 못해…방송작가지부장 "예술인 신문고 실효성 높여야"

2021-10-07     장슬기 기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방송작가가 출석해 작가들에게 불리한 계약서를 지적하고 이를 구제하기 위한 ‘예술인 신문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문체위 소속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7일 국정감사에서 “201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지부장(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말을 들어보니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거나 계약서를 쓰더라도 문제점이 있더라”라며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한별 방송작가지부장에게 구체적인 실태를 듣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측에 답변을 요구했다. 

김 지부장은 “문체부 표준계약서를 준용했지만 MBC 계약서는 ‘회당 원고료’라고 돼 있는데 비드라마 작가들은 원고집필 말고도 섭외·자료조사·편집·구성·자막 등 다양한 일을 과하게 하고 있는데 이를 회당 원고료로 지급하고 있다”며 “새로운 계약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올 상반기까지 사용된 TBS 계약서를 보면 계약기간이 ‘개편 전일’까지로 돼 있는데 방송사 개편은 정해지지 않고 방송사가 임의로 정한다”며 “문체부 계약서 사용지침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체부 지침에선 ‘계약기간은 1일부터 촬영종료 시까지로 한다’, ‘계약기간은 1일부터 프로그램 폐지 시까지로 한다’, ‘계약기간은 1일부터 개편 시까지로 한다’ 등을 계약서의 잘못된 예로 들고 있다. 이는 노동기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일방적 부당해고의 근거가 된다. 문체부는 계약종료시점을 년·월·일 단위로 특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신고하기 위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신문고’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김 지부장은 “예술인 신문고에 신고하는 방법 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어렵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신문고 신고 주체가 당사자 개인인데 작가들, 방송계 비정규직, 문화예술인들은 노조에 기초상담하는 것도 우려하는 분위기”라며 “노동환경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방송계 관행 때문에 (계약기간) 도중에 신고할 수 없고 그만둔 뒤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서면 계약이 어려운 상황이면 사업장 자료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신고를 포기한다”고 덧붙였다. 

방송작가유니온 등 노조나 예술인 단체 등을 신고주체로 인정하는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김 지부장은 “방송사 서면 계약 위반은 방송작가유니온 등에서 (당사자와) 1차 상담을 하고 그 이후 조사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지부장은 “과태료 부과 수준도 문제”라며 “최대 500만원인데 방송사·제작사에겐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 지부장은 “작가들이 임금체불을 자주 겪는데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아도 과태료가 500만원이니 ‘계약서를 안 쓰고 과태료를 내고 만다는 식’으로 나올 우려가 있다”며 “금액을 높이는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고에 대한 처리속도도 문제였다. 김 지부장은 “TBS 계약서를 올해 7월에 신고했는데 오늘(10월7일)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TBS에 출석조사도 없었다”며 “과태료 결정이 나와도 8개월간 실제 부과를 하지 않은 사례도 있는데 이는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김 지부장은 “예술인 신문고는 좋은 제도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방송작가 등 문화예술인이 겪는 불공정계약 등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작가들은) 노동법 보호에도 배제돼 있어 민사소송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문체부와 예술인복지재단이 개선해달라”라고 말했다. 

박영정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는 “현재는 (신고처리) 지연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인정하며 “막연히 기다리면서 고통을 겪는 예술인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가 신고하게 돼 있지만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되면 예술인조합을 통해 대신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겠다”고 말했다. 

방송작가들의 별도 표준계약서에 대해 박 대표는 “저희 재단이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곳은 아니지만 (문체부) 방송과와 얘기해서 새로운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실효성을 높이겠다”며 “예술인권리보장법 준비과정에서 직권조사와 조정기능을 확대하면 실효성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를 해서 내년 시행 전까지 실효성 높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8월31일 국회를 통과한 예술인 권리보장법(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은 1년 뒤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예술인의 권리보장을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률로 권리침해 행위나 성폭력 금지, 예술인 권리구제기구 설치,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