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아카이빙'의 나라, 대한민국
'리포트래시', '기레기 추적자'가 던지는 함의 "언론의 중앙화된 의제화에 저항하는 전략적 트롤링" "언론이 더 많은 투명성과 책임성 고민해야"
한국에선 2014년 이후 ‘기레기’라는 멸칭이 보편화 됐다. 나아가 한국에선 ‘기레기 아카이빙’ 서비스도 등장했다. 해외에도 기자를 향한 멸칭은 존재하지만, ‘문제적’ 기자와 기사를 대상으로 한 아카이빙 서비스까지 등장한 사례는 이례적이다.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한국언론정보학회 정기학술대회 ‘언론 혐오 담론의 확산과 언론의 대응책’이란 주제의 세션에서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 ‘기레기 아카이빙’을 분석했다.
강보라 연구원은 “2017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소위 ‘기레기’ 언론을 감시하는 ‘기레기’ 아카이빙 사이트가 등장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며 “수사적 표현으로서 ‘기레기’가 2014년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박근혜 정권의 퇴진과 문재인 정부의 등장이 맞물린 2017년을 기점으로 ‘언론감시 DB’, ‘노룩뉴스’, ‘기레기 추적자’, ‘리포트래시’, ‘My Giregi’ 등 여러 ‘기레기’ 아카이빙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아직까지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기레기 아카이빙’은 자체 웹페이지를 가진 ‘리포트래시’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기반으로 삼은 ‘기레기 추적자’다.
강보라 연구원은 ‘기레기 아카이빙’을 가리켜 “언론이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언론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문가들 또한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란 믿음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강력한 진영주의가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맥락,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반-지식인, 반-언론인 정서 구조가 보수 진영과 충돌하는 맥락에서 언론과 지식인이 주요한 배격의 대상으로 떠오른 맥락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3월부터 운영된 것으로 보이는 ‘리포트래시’는 “매일 올라오는 기레기 수집, 순위, 평가 박제 서비스”로 기사 제보를 바탕으로 아카이빙이 이뤄진다. 제보자가 스스로 평가항목에 부합하는 기사를 제보하는 형식이며, 리포트래시가 제시하는 항목은 ‘가짜 뉴스’, ‘악의적 제목’, ‘사실 왜곡’, ‘통계 왜곡’, ‘잘못된 인용’, ‘오보’, ‘헛소리/선동’이다. 제보와 함께 해당 기사는 데이터베이스에 텍스트로 저장·보존한다. 리포트래시는 “이미 제보된 기사라도 여러 번 제보하면 기레기 순위와 기사의 쓰레기 순위가 올라간다”고 밝히고 있다.
‘리포트래시’는 가장 많은 제보를 받은 기사와 기자, 언론사를 일일, 주간, 월간 단위로 나눠 순위를 매긴다. ‘명예의 전당’에는 매주 가장 많은 제보를 받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1위부터 10위까지 보여준다. 6월 첫째 주부터 3주 연속 중앙일보 기자가 주간 베스트 1위를 기록했다. ‘기사 싫어요’ 누적 1~10위 기자들은 조선일보 7명, 한국경제 2명, 중앙일보 1명 순이었다. ‘기사 싫어요’ 누적 1위는 한국경제 김아무개 기자다.
2017년 말부터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운영 중인 ‘기레기 추적자’는 1만9000여명에 이르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월급루팡 기레기님들을 추적한다’는 모토로, 기사 캡처 화면과 함께 운영자의 짧은 코멘트를 담은 포스팅이 올라오는데 무거운 비판보다는 피식 웃을 수 있는 풍자적 평가가 일반적이다. 일례로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가 6월23일 출고한 ‘청와대 옮긴다면, 풍수전문 추천 최적지 4곳은’ 기사를 가리켜 “대단한 경제전문기자 나셨습니다”라고 쓰거나, 최근 논란이 된 조국 전 장관 일러스트 건에 대한 조선일보 사과문을 가리켜 “사과는 돈으로 하는 겁니다”라고 꼬집는 식이다.
‘기레기 추적자’ 운영자는 2019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옳고 그름은 독자에게 맡긴다는 미명 아래 언론인들이 직무유기를 하는 건 아닌가. 언론이 특정 사안을 다룰 때 교묘한 워딩으로 사람들을 호도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놈이 그놈’이란 생각을 만들어내는 게 나쁘다고 본다”고 밝혔다. 강 연구원은 “‘기레기 추적자’의 운영자가 문제 삼는 건 언론의 ‘가장된 중립성’과 ‘양비론적 태도’로 보인다”고 했으며 “운영자는 ‘진실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 옳고 그름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형식적으로 중립을 지키거나 그 어떤 결론도 유보하는 기사는 배격해야 할 대상이 된다”고 풀이했다.
강 연구원은 이같은 ‘기레기 아카이빙’을 가리켜 “언론과 기자를 향한 온라인 트롤링(online trolling)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지식이 헤게모니 전쟁을 치르는 온라인 공간에서 언론 또한 대표적인 지식 생산자로서 트롤링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자를 향한 다양한 종류의 공격을 포함하는 온라인 트롤링이 기자-독자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 또한 잇따른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통상적으로 트롤링은 민주주의를 균열시키는 반사회적 공격을 뜻하지만 한국에서 언론을 향한 트롤링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온라인 트롤링을 일상적 저항의 차원에서 전략화했다는 해석”이라며 “기레기 아카이빙이 달성하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언론의 중앙화된 의제화에 저항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트롤링’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물론 기레기 아카이빙도 편향의 문제, 낙인과 배제의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기레기 아카이빙 앞에는 힘 돋우기와 검열이라는 갈림길이 놓여있다”고 했다.
강 연구원은 “기레기 아카이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언론이 더 많은 투명성과 책임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버그를 수정하고 버전을 업데이트하며 이용자와 활발하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디지털 시대에 뉴스라는 지식의 형태는 언뜻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개하지도, 발행 이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적으로 언론은 정부나 자본 등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으로서의 역할을 이행해왔다. 문제는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의 위치가 영원불변한 것인지, 또한 언론이 어떻게 그 권위를 승인받았는지 스스로 묻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기레기 아카이빙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움직임을 감시견 역할을 침해하는 세력으로만 본다면 언론은 고답적 순환 논리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 경고했다.